Love Story/사랑 그 흔한 말 No.232 맴피스 2008. 2. 15. 20:41 시장통 작은 분식점에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그치기는커녕 빗발이 점점 더 굵어지자 어머니는 서둘러 가게를 정리한 뒤 큰길로 나와 우산 두 개를 샀습니다. 그 길로 딸이 다니는 미술학원 앞으로 달려간 어머니는 학원 문을 열려다 말고 깜짝 놀라며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습니다. 작업복에 낡은 슬리퍼, 앞치마엔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안그래도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 딸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된 어머니는 건물 아래층에서 학원이 파하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한참을 서성대던 어머니가 문득 3층 학원 창가를 올려다봤을 때, 마침 아래쪽의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어머니는 반갑게 손짓을 했지만 딸은 못본 척 얼른 몸을 숨겼다가 다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숨겼다가 얼굴을 내밀곤 할 뿐 초라한 엄마가 기다리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어머니는 딸의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딸이 부끄러워할 것만 같아 한나절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다늦은 저녁에야 이웃집에 잠시 가게를 맡긴 뒤 부랴부랴 딸의 미술학원으로 갔습니다.“끝나 버렸으면 어쩌지…….”다행히 전시장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벽에 가득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어머니는 한 그림 앞에서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비, 우산, 밀가루 반죽이 허옇게 묻은 앞치마, 그리고 낡은 신발. 그림 속엔 어머니가 학원 앞에서 딸을 기다리던 날의 초라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딸은 창문 뒤에 숨어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가슴에 담았던 것입니다. 어느새 어머니 곁으로 다가온 딸이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모녀는 그 그림을 오래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져 삼수를 할 때였다. 엄마는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내가 아침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그때마다 내 손에 꼭 이천원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아침도 거른 채 그 길로 가게에 나가셨다.그 해 겨울 나는 또 대학에 떨어졌다. 좌절감에 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엄마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오랬동안 추위에 떨며 나를 기다렸는지 엄마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재경아,이것아...." 엄마는 얼른 내 손을 꽉 잡더니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엄마의 병은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가 겹친 뇌졸중이었다. 처음에 엄마는 심한 언어 장애에 기억력까지 상실하여 우리 가족들의 이름은커녕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고, 의사 선생님은 '흰돼지'로 불러 병실을 온통 웃음 바다로 만들기도 했다.퇴원 후에도 엄마는 가끔 집 앞 구멍가게에서 집을 못 찾아 하루 종일 동네를 헤매고 다녀, 나와 언니는 교대로 엄마를 곁에서 지키고 있어야 했다.내 스물한 살의 생일날이었다.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엄마 때문에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셨다. "내가 죽으면 우리 막내딸은 어쩔까? 누가 우리 딸 걱정해 줄까?"엄마는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내손에 뭔가를 꼭 쥐어 주셨다. 손을 펴 보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원,십원짜리 동전들이었다. 세어보니 꼭이천 원이었다. 정신을 잃는 그 순간에도 막내딸에게 이천 원을 쥐어 주는 것을 잊지 않으신 엄마, 나는 그만 엄마를 붙잡고 큰소리로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