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91

2007. 11. 27. 19:49Love Story/사랑 그 흔한 말


"학상, 시간 있으믄 잠깐 이리 건너와 볼텨?"

창문으로 들어오는 유월의 햇살이 코끝을 간지르던 어느 날 오후,

하숙집 주인 할머니의 걸걸한 음성이 나의 졸음을 깼다.

어젯밤에 음악을 좀 크게 틀어 놓았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려나,

아니면 밤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친구들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두 달째 밀려있는 하숙비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방은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 낡은 경대와 이불 넣는 작은 장이 전부였던 방 한 구석에

못 보던 앉은뱅이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위에 번쩍이는 컴퓨터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와… 할머니,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어서 나긴, 샀지."

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이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디,

편지 보낼 때마다 일주일씩이나 걸린다니 견딜 수가 있어야제.

이 놈만 있으면 편지가 즉시 그 쪽으로 갈 수 있다믄서?”

할머니는 인터넷 이메일(E-mail)을 통해

미국에 있는 아들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말만 듣고

거금을 들여 최신 기종의 컴퓨터를 장만하신 것이었다.

"막상 사다 놓긴 했는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힘들겠지만 학상이 시간 좀 내서 가르쳐 줄텨?”

나는 컴퓨터를 켜는 법에서부터 인터넷에 접속하는 법,

이메일을 보내는 법 등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렸다.

설명이 끝날 때마다 할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시긴 했지만

아들을 생각해서인지 포기하진 않으시려는 눈치였다.

한참이나 서로 진땀을 흘리다가 결국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로 인터넷에 접속해

할머니 수첩에 적혀 있는 아들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시켜

간단하게 사용하도록 해드렸다.

"할머니, 이제 여기에 편지를 한번 써 보세요.”

할머니는 머뭇머뭇 컴퓨터 앞에 다가 앉아

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자판을 누르기 시작했다.

"사… 랑… 하… 는… 나… 의… 아… 들… 보… 아… 라.”

힘겹게 거기까지 입력시킨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 동안 움직이질 않으셨다.

잠시 후 눈물 한 방울이 자판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맷자락으로 대충 눈물을 훔친 할머니가

내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으며 남긴 한 마디.

"이거… 편지지나 컴퓨타나 눈물나는 건 다를 게 없구만.”


전은상 / 서울동작구 상도동의 하숙생



보고십흔 내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보고 십흔 내 아들 언제나 만나볼까.

외국으로 떠난지 87년도 떠났으니 8년 세월 다 되도록 소식 한장 없소.

전화 한 통이라도 잇슬까 하여 기다리고 보니 어미는 7십고개를 넘었구나.

살기도 많이 살엇다. 엇지하여 생이별을 하게 되엇는지

모든게 어미 타시다.

어디 가 살든지 몸건강하여라.'

10월 2일 오후 5시경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6리 한탄강에서

낚시를 하던 한 사람이 할머니가 숨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숨진 할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손가방에는

'사랑하는 내아들 보고십흔 내 아들'로 시작되는 유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편지지 뒷면에다 깨알같이 쓴 유서의 내용은

멀리 외국으로 떠난 아들을 8년간 그리워하면서 살아온 할머니의

외롭고 고달픈 인생살이를 전하고 있었다.


며칠 뒤 신문에는 이 할머니에 대한 기사가 다시 실렸다.

'꿈에도 잊지 못한 어머니, 못난 아들 하늘에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투신 할머니의 또다른 애절한 사연이 전해졌다.

할머니는 71세의 송혜호 할머니로 밝혀졌고

외국에 간 아들은 8년간 소식을 끊었던 것이 아니라,

노모를 잘 모실려고 리비아 건설 현장으로 갔다가

풍토병으로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난 송 할머니의 외동아들 김승연씨였다.

그때 나이 27세. 송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을 그리워 하다가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조그만 폐도 끼치지 않으려고

손때 묻은 주민등록증, 경로우대증까지 모두 버린 채

유서 한장만을 남기고 늙은 몸을 강물에 던졌던 것이다.

송할머니의 큰 사위인 홍씨는 '너무나도 아들을 보고 싶어 하셔서

차마 죽었다고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알려드릴 것을 그랬습니다.'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좋은 생각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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