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ta Ahn

2008. 6. 9. 15:42Sports Story/축구&수원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안정환이 홀로 걷고 있었다.

그는 경기 직후 뜨겁게 달궈진 '친선 세리머니'에서 20여m 떨어짐으로써
경기 결과를 승인하지 못하는 듯한 고독한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다른 선수들처럼 그에게도 허락된 90분은 모조리 흘러갔다.
그는 양팀 선수들의 열띤 분위기에서 멀찍이 이탈해 벤치를 향해 홀로 걸었다.

그는 그렇게 홀로 그라운드를 빠져나와 벤치에 풀썩 주저앉았다.

지금 안정환은 어디 있는가? 독일? 뒤스부르크?

그가 최종 엔트리 23명에 포함된다면 수많은 기사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현재 그의 후배들이 주전 경쟁에서 더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나는 안정환을 보고 싶다.
그의 고독, 그의 쓸쓸함.
화장품 광고의 화사한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는 성장기의 고독과 깊은 상실로 가득 찬 내면들.


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온갖 낯 간지러운 미사여구를 혐오한다.
'평화의 제전'이니 '화합의 한마당'이니 하는 말의 공허함을 참기 어렵다.
그렇다고 축구 경기가 현실의 거울상이되어 정말 '폭력과 대립의 장' 이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축구란 외로운 사람들의 열렬한 짝사랑이며 고독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분투이며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피정의 공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외롭기 때문에 공을 차는 것이며 '관중'이라는 집합명사로 불리지만,
그 스탠드의 환호성이란 외로운 사람들의 아우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애국심' 대신 쓸쓸한 사람들의 애틋한 탄성을 더 사랑해왔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경기가 끝난 그라운드에는 늘 바람이 부는 것이다.

혹시 야간 경기를 보게 된다면 지하철 시간 맞추려고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말기 바란다.
관중이 거의 빠져나갈 무렵, 경기장의 라이트가 하나둘씩 꺼지는데,
그때 쓸쓸히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기 바란다.

그렇게 바람이 부는 곳에 늘 서 있는 안정환.

그가 보고 싶다.







Fantasista, 이탈리아어라고 들었습니다.
뜻처럼 환상적이고 멋진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칭하는 단어겠죠

솔직히 우리나라에 판타지스타라고 할분은 차범근 현감독님이 있겠지만
그분의 플레이는 실제로 뵌적이 없어서..

그래도 현재 제마음속의 판타지스타는 안정환선수입니다.
특히 그의 개인기중 오른발로 공을 뒤로 보낸다음 턴을하고나서의 질주하는모습을 좋아하구요~ 가끔씩 멋진 터닝슛도 참 좋아합니다.

일단 그를보면 그가 선발이건 교체멤버건 안정환선수가나오면 뭔가해줄거 같고
기분좋은슛팅을 날려주는 선수라 더 그런것같아요~
 
강한 중거리슛보단 낮게깔리는 골리가 막기힘든 공을차서인지 더더욱 가슴이 설레고 그래요.

아주대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첫 세리아리거이고
차범근감독님이후 빅리그에서 한경기에 두골을 넣은선수는 제가알기론 안정환선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선수중 월드컵 최다골을 넣은선수이고 그의 핸섬한 외모를 좋아하시는 팬도
많고해서 한때는 K리그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선수이기도 하죠

대우로얄즈를 최강의 서포터로 만든것도 안정환선수가 주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축구의 발전에 큰공을 세운선수라고 전 칭할수잇을거 같아요.
전 그가 2010년도에 꼭 주장을 차고 나와서 멋진플레이 또 수원에서
제3 제 4의 축구부흥기를 만들수있는 발판이되었으면하며,
좋은결과 있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6 독일월드컵을 통해 난 다시 유럽진출을 꿈꾸고 있었어

그러기에 난 내가치를 증명해야만 했지

월드컵 본선이 치뤄지기전 평가전에선 난 부진했었지

하지만 난 내컨디션이 아니었어

내 컨디션은 토고전에 맞춰져 있었지



그러나 난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어

뒤지고 있던 후반전에서야  등장할수 있었지

결국 난 역전골을 터뜨렸고 토고전을 승리로 이끌며 내 진가를 발휘했지

세계는 '골든보이 또 한번 한국을 구하다'란 내용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했어


난 당연히 프랑스전부턴 제대로 기회가 오겠구나 생각했어

프랑스 언론 역시 할머니와 안정환을 빗대어 카툰으로 풍자했었지


하지만 난 선발이 아니었어

전반이 끝나고 후반이 시작되어도 난 투입되지 않았어

후반이 좀 지난후에 난 투입되었지

그래도 팀이 지지 않아서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했어



난 마지막 기회인 스위스전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나 이번에도 난 선발이 아니었어

후반이 한참 지나도 난 투입되지 않았어

결국 난 후반이 거의 끝날무렵에나 투입이 됐지

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어


나의 꿈인 유럽행은 저멀리 떠나갔어

나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들도

도대체 월드컵에 선발로 나오지 못한 이유가 뭐냐며

질문을 해대는데... 난 너무나 당황했어

그러자 감독과의 불화설이 있었냐며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들이었어




난 너무나 억울했어

2002년도에 이어서 2006년도까지...




한국의 델 피에로, 안정환



흔히 '판타지스타'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판타지스타란 슛, 패스, 드리블의 삼박자를 갖춘 완벽한 선수, 혹은 그에게 공이 갔을 때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하는, 말 그대로 '판타스틱'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판타지스타의 대표적 유형으로는 이탈리아의 핀투키리오 '델 피에로'를 손꼽을 수 있다. 슛팅과 어시스트, 드리블에 모두 능한 델 피에로는 현존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세계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명으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델 피에로가 공을 잡았을 때, 사람들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인다. 그가 펼쳐보일 '마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패스게임에 의한 득점이나 킥 앤 러쉬에 의한 통속적이고 재미없는 축구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델 피에로는 보여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그러한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한국형 판타지스타, 안정환이다.



***98 월드컵 참패 이후, 혜성과 같이 등장한 테리우스***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던 98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거둔 성과는 처참했다. 1무 2패, 2득점에 9실점(자메이카와 더불어 최다실점팀). 기대했던 한국팀의 공격수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전문가들은 실망스런 월드컵 성적으로 인해 국민들의 축구 열기가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국내프로축구(K-리그)가 위축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걱정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98 프로축구는 그 어느때보다 폭발적인 인기와 관심을 모으며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중심에는 신세대 스타들의 대거 출현이 있었다. 한국형 플레이 메이커로서 일본의 나카타와 비교되는 '앙팡테리블' 고종수를 필두로,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급부상한 '라이언 킹' 이동국, 그리고 화려한 외모와 테크닉의 '테리우스' 안정환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특히 안정환은 한국축구역사상 전무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그가 출장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가 소속되어 있는 부산 대우팀의 경기를 보러오는 관중들의 수가 엄청난게 변화한다는 점이었다. (1만명 이상 차이가 난 경우도 있다고 함)

이는 안정환이 실력 뿐 아니라 외모까지 갖춘, 그야말로 '스타성'을 타고난 선수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축구선수가 아니었다면 모델을 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조각상처럼 수려한 외모, 뛰어난 센스의 헤어스타일, 거기에 다른 선수들과는 한 차원 틀린 현란한 드리블과 개인기는 일반축구팬은 물론 축구에 관심없던 여성팬들까지 경기장으로 끌어모았다.

플레이 메이커 고종수, 스트라이커 이동국, 테크니션 안정환. 최고의 신예들이 배출된 98년 축구계는 그 어느때보다 들떠 있었다.



***테리우스, 한국축구를 평정하다!***


대학시절 아주대학교 소속으로 대학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MVP에 선정된 바 있던 안정환은 이번엔 K-리그 평정에 나섰다.

98년부터 만 감독에게 발탁되어 부산 대우 소속으로 뛰게 된 안정환은 99년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안정환은 안정적인 볼 키핑력을 바탕으로 한국선수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현란한 동작을 통해 상대수비수들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리고는, 골키퍼가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정확하고도 강력한 슈팅을 날리곤 했다. 그는 이때 이미 동료로부터 패스를 받아 골을 넣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드리블을 하여 골을 창조해내는, 이른바 '한국형 판타지 스타'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 안정환의 활약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꽁지머리에 깔끔한 외모를 한 그가 하프 라인부터 단독질주하여 상대수비를 모조리 제쳐버린 뒤 골키퍼마저 턴 동작(크루이프 턴은 아니었던 듯)으로 농락해버리고는 여유롭게 골대 안으로 공을 차넣던 모습. 그 모습은 정말 센세이션에 가까웠고, 이미 한국의 수준을 뛰어넘은, 아니 탈아시아적인 테크니션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99년 그 누구보다 빛나는 플레이를 했던 안정환은 MVP에 선정되었고, 득점 부분에서도 샤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실력도 외모도 완벽한 테리우스의 K-리그 제왕 등극에 축구계는 전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젊은 선수의 앞날엔 영광만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페루자, 높고도 높은 이탈리아 축구의 장벽***


98 월드컵 이후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게 된 것은 단연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였다.

대회 직후 이탈리아 페루자로 이적하게 된 나카타는 곧 놀라운 활약을 펼쳐보이며 일약 세리에 A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하나로 급부상한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세리에 A 최고명문 중 하나인 AS 로마에 영입된다.

처음에는 아시아 시장의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영입했던 나카타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자 페루자는 다시 한번 아시아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이번에 타겟이 된 것은 한국축구계의 새로운 히어로로 떠오른 안정환.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한국의 테리우스는 야심차게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안정환은 페루자에서 선발출장의 기회를 잡지못했고, 늘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구단주에게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라고 평가받은 그의 테크닉도 출장하지 않는 이상 선보일 기회조차 없었다.

또 수준높은 이탈리아 축구를 접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의 단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외모에서 느껴지듯 거친 몸싸움을 싫어하고 헤딩에 약한 점, 체력적인 문제점 등 화려한 테크닉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약점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비록 시즌 막판 몇경기에 출전하여 소나기골을 퍼붓는 등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그에게 이탈리아에서의 2년은 힘든 시간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같은 시기에 나카타는 AS 로마에서 나카타에게 밀려 고생하지 않았나. 바야흐로 아시아 천재들의 수난시대)

그렇게 안정환은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쩌면 2002년 6월의 어느날, 뜨거운 반지의 입맞춤으로 한반도 전체를 열광케 만들 '역사적인 순간'을 위한 전주곡이었을지도 모른다.



***2002 월드컵, 세계를 놀라게 한 '반지의 제왕'***


페루자에서의 아픔을 딛고 대표팀에 복귀한 안정환은 또 한번의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스트라이커로 투입된 그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두 골을 뽑아내며 다시 한번 한국축구의 히어로로 떠오른다. 이탈리아에 갖다온 후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화려해진 테크닉에 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스코틀랜드전에서의 두번째 골 (다리 사이로 공 흘리기 후 패스를 받아 로빙 슛)은 호나우두가 칭찬했던 장면으로 유명하다.

안정환은 화려한 플레이뿐아니라 파마 머리, 반지 키스 세레모니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끌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이때부터였는지 모른다. 뭔가 다른 선수들에겐 없는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만 같은 판타지스타의 냄새, 델 피에로의 환영을 안정환에게서 본 것은.

그리고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안정환의 미국전 동점골과 이탈리아 역전골에 대해서 아직까지 '운이었다'는 비판이 따른다.

하지만 이제와서 뭐라 한다고해도 그 골을 넣은 것은 '안정환'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그 역사적인 순간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이 바로 반지의 제왕이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을용이 프리킥을 올렸을 때 안정환은 누구보다 빨리 미국진영으로 파고들었고,

이영표의 크로스를 말디니보다 더 높이 뛰어 골로 연결한 것도 안정환이었다.

이 두 골이 더욱 놀라운 것은, 두 골 모두 늘 안정환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헤딩골'이었다는 것이다.

약간의 럭키성도 있겠지만, 안정환의 노력과 투지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의 실력처럼 화려한 골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그 무엇보다 값진 득점들을 터뜨렸고, 대회 내내 선보인 안정적인 볼 키핑과 날카로운 슛팅 등은 역시 테리우스다웠다.

그는 분명 2002 월드컵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다.




***안정환, 다시 한번 세계무대로 뻗어나가라!!!***


슛, 패스, 드리블 삼박자를 갖춘 선수를 판타지 스타라 한다.
그가 공을 잡았을 때,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라 믿게 만드는 것이 판타지 스타다.
이탈리아에는 델 피에로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안정환이 있다.




안은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를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많은 기회를 줄수 없는 것이 아쉽다.'
                                                            - 세르세 코스미 페루자 감독 -
 
 
왜 코리아의 부산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그의 완전이적을 두번이나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가 완전한 페루자의 일원이 된다면 난 주저없이 그를 주전으로 활용하겠다.
                                                                                        - 세르세 코스미 페루자 감독 -
 
 
 
아시아에 정말 이런선수가 있었나,그는 나에게 델피에로를 상대하는것과 같은 중압감을 준다.
나는 경기 내내 마치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착각에 빠졌다.
델피에로는 분명 우리팀인걸 알고있는데도 말이다.
                                                            - 프랑스 국가대표 튀랑 - (유벤투스와의 경기이후)
 
 
 
정말 아름답다 안느는 아름다운 플레이어다.
                            - BBC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혼자 두골을 몰아치는 안정환의 경기해설중)
 
 
 
 
'한국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안정환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안정환의 스타일은 한국을 대표했던 스트라이커 차범근 황선홍 등과 다르다.
새로운 스타일'이란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치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와
달리 현란한 기술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플레이메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이는 형태를 말한다.
안정환이 국제무대에서 많은 경기(32경기 8득점)를 뛰지는 않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프로 데뷔 2년차인 99년 21골 7도움으로 MVP에 선정됐고,
세리에A의 페루자로 이적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결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 AFC 풋볼아시아 -'BREAKING THE MOULD(형식을 파괴하라)'중-
 
 
 
 
'테크니션..그중엔 판타지 스타성향을 가진 선수를 여럿봤다.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이들의 단점은 팀플에 맞춰지는 단순한 플레이 계열엔
호흡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판타지스타는 감독이 활용할줄 모르면 미움받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화려한 플레이를 보이면서도 활용할줄 모르면
사라지는 환타지 스타의 양면적인 모습이라는 것.
한국팀을 상대했을때 페루자에서 뛰었다는 안(AHN)을 봤었다.
우리팀의 누구와 무척 닮았더라 무척 좋은선수다.
하지만 저 선수를 다룰만한 감독이 있을지 모르겠다'
                                                                    - 전 이탈리아 감독 트라파토니 -
 
 
 
안느는 우리에게 후이코스타를 대신할 선수이다. 안느가 유럽출신이였다면
그는 이미 후이코스타와 같은 선수가 되어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 여지가
있다는 사실에 입맞추어 감사한다.
                                                            - 디에고 델라 발레 피오렌티나 구단주 -
 
 
 
안느 우리에게 와라 우리에겐 환타지아스타를 활용할수있는 시스템이 있다.
당신을 열광적으로 맞아줄 서포터가 있다. 라치오로 간다면 넌 인종차별에 울어버릴거다.
                                                                            - 피오렌티나 서포터즈 걸개현수막 -
 
 
 
내가 인터밀란의 첫훈련에 들어갔을때 인터의 코치진이 가장 먼저 체크한것은
내가 아니라 전동료 안느의 계약사항이었다. 나또한 그와 플레이 하길 바라고 있다.
                                                                               -  이탈리아 국가대표 마테라치 -
 
 
 
만약 폴란드에 안정환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2002, 2006년 월드컵의  수모와 수치를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 예지 두덱 -
 
 
 
방한기간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코리아인들이 자신의 환타지스타인 안느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안느는 유럽에서 파울레타(PSG)보다 높게 평가 받고있다. 그의 화려한 캐리어가
보이지 않는가? 아무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을순 없다.
                                        - HELDER Marino Rodrigues Cristovao 셍제르망수비수 -
 
 
 
안정환은 전형적인 판타지스타성향의 선수이다. 내게 기회가 있었다면 난 그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다음이 누가될질 모르겠지만 안정환을 어떻게 활용하는데에 한국의 월드컵 운명은
달려있을 것이다. 그는 마치 루이코스타와 같은 플레이를 할줄안다.
나에게 가장 욕심나는 한국선수를 뽑으라면 그건 당연 안정환과 이관우이다.
그들이 포루투 출신이라면 이미 그들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있을 것이다.
                                                                                                - 코엘류 감독 -







기자: 한국선수중에 가장 뛰어난 선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맨체스터의 팍인가?

앙리: (망설임 없이)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AHN이다.

기자: (당황하며) 안정환 말고 맨체스터의 팍이라던가 용표리라던가 동국리도 이번에...

앙리: (기자의 말을 끊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AHN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고 아주 특별한 테크닉을 지녔다. 그가 가진 테크닉의 비결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기자: 안정환 말고 맨체스터 팍모르나? 팍! 팍!

앙리: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피곤하다 이제 인터뷰를 질문은 그만 받도록 하겠다.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그에게 어떤일들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고나 이러는지..

▷선진축구를 접하기 위해 홀홀단신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 진출했던 페루자 시절,
너무나 외로워서 '벽하고 이야기를 했다'는 우리의 안정환..

이건 차치하고라도..

▷그 흔한 오렌지를 안정환은 청소년대표가 된 후에야 처음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그것을 주려고, 먹지 않고 남몰래 가방에 싸왔다고 한다..

▷이영표의 한약을 한봉지씩 얻어먹기도 하고, 또 차붐을 아빠로 둔 차두리를 많이 부러워했다던 그..

선수초기 인터뷰에서..꿈이 무어냐고 묻자..돈 벌어서 할머니랑 동네 슈퍼 차리고 싶다..였단다..

더 거슬러 올라가 그의 어린시절..가난하고 불우했음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안정환을 실질적으로 키워준 외할머니는 운동을 엄청 반대했단다..
왜냐고?..배가 쉽게 꺼진다고..

▷하지만 어려서도 의지가 강했던 안정환은 배가 고파 생무를 뽑아먹기도 하고,
또 굿판을 전전하며 떡을 얻어 먹어가면서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고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때 이사를 무려 14번이나 하면서도,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2시간반 동안이나 혼자서 통학을 했단다..

▷하루는 안정환이 학교를 갔다오자 뜬금없이 100원만 달라고 했단다..
뭐하게?라고 물으니까..나가서 아빠를 사오게..라고 대답했단다..ㅜㅜ






차감독님이 꽤나 배번에 신경 쓴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이 있는 수원팬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감독님이 수원에 재임 중인 기간동안의 10번과 9번을 누가 누가 달았었나를 상기해보면 금방 유추해 낼 수 있는 사실이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재의 수원이지만
어쨌거나 07시즌 현재의
수원감독은 차범근 감독이시고
수원선수는 안정환 선수입니다

축구를 싫어했던 스포츠 경멸론자를
진성K리그팬으로 만들어 준 나의 영웅과

한국 일반대중에게는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수원팬들에게는 아직 호평을 받기에는
미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감독의 조합이지만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우승을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감독과
아직도 야유가 그치지 않고 있는 선수를

내 스스로도 그닥 합리적이지 못한 조합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면서도

뚜껑은 열어 봐야 안다
는 속담처럼 멋진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하고 있습니다

차감독님과 안선수는
일반대중의 잣대로 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축구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축구팬들이 있습니다

수원의 팬들은 수원의 일원으로써
전임 김호 감독님에 대하여
어쩌면 팩트 이상의 향수와 환상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고
그리하여 냉정하게 말하자면
기대 이하의 결과를 거두고 있는 차범근 감독에 대하여
날 선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입니다

반지의 제왕
꼬레아노 안느
살아있는 K리그의 전설 안정환은
드디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만
그가 과연 전성기에는 못 미치더라도
적어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줄런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국내 무대로 복귀하기에 앞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긴장감과 조바심을 그가 가지고 있을 만큼
팬들의 마음도 바짝 옥죄이고 있습니다

팬의 마음이라면 뭐 그렇습니다
그가 설혹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만큼
칼날이 무디어졌다손 치더라도
그를 다시 그라운드에서 보게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며
‘과연 안정환이야’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기대는 기대인 것이고
팬으로써 실망하는 일은 없는 거라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희로애락 흥망성쇠가 있는 것이고

사람이라서 성장하고 상승하는 국면이 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라서 노쇠하고 퇴보하는 국면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서른 살, 안정환을 아는 가

천재는 외롭다고 했다. 그래서 그토록 그가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지속해야만 했는지 모른다. 판타지스타. 이탈리아에서만 통용되는 말로만 알고 있다면 그것은 오산이었다. 유럽에 몇몇 '그것에 가까운 선수들'이 있다고 한다면 조금은 수긍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나라, 대한민국에 진정한 판타지스타가 있다면 믿겠는가. 믿을 수 없다해도 믿어야만 한다. 안정환이 있어 그 말은 모두 현실이 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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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판타지 스타, 안정환_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공격수를 현 세대에서 찾으라면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이동국을 꼽는다. 그만한 듬직한 체격이 많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차범근-최순호-황선홍 등 과거 한국을 이끌었던 스트라이커와 비슷한 스타일을 지닌 포워드를 대표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안정환이라면 어떨까.  


 안정환은 항상 논외로 여겨졌다. 사람들의 우려처럼 체력적, 체격적으로 밀리는 공격수이기 때문에 유럽과 경쟁하고픈 우리에겐 더없이 큰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선수가 아니다.


 그의 장기는 또 다시 언급해야겠지만, '작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몸싸움도 해낼 수 있고 볼을 따내기 위해 결투를 피하지 않는, 자존심과 카리스마를 지닌 선수다. 하지만 단순히 그를 스트라이커에 한정하기에는 좀 더 특별한 선수인 것 만은 자명하다.


 이동국에게서 '센터포워드'라는 포지션을 볼 수 있다면, 박지성에게는 '미드필더'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안정환은 그 중간이다. 공격수이면서도 미드필더인. 최전방에서 골을 넣어줄 수 있는 한방을 지녔으면서도 골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안정환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선수를 일컬어 '판타지스타'라 부른다.


 이탈리아의 델피에로가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오랜시간동안 그러한 칭호를 달며 팬들을 열광시켰던 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즘들어서야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델 피에로에 대해 인색할 수도 있지만 '델피에로 존'이라고 불리던 페널트박스 왼쪽외곽에서의 플레이는 보고 있노라면 혀를 내두를만 했기에 감히 '판타지스타'라는 말을 허용할 수 있던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토티를 그렇게 부른다. 여담이지만 이번 월드컵이 열리기전 토티가 부상을 당하자 그 수술 당일, 전례가 없는 생중계를 했다는 것만 보다도 그들이 '판타지스타'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 안정환은 그런 선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 단 한방으로 승부를 결정지어줄 수 있는. 폭발적인 드리블링과 환상적인 슛팅력을 지닌.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수비수를 농락할 수 있는 센스와 테크닉을 지닌. 그것이 바로 안정환이다.


 안정환의 진정한 강점은 바로 슛 테크닉에 있다. 이동국처럼 화려한 한방을 지녔거나, 조재진 처럼 높이에서 강하다거나, 박주영처럼 천부적으로 타고난 결정력이 아닌 본인 만의 독특한 능력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슛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컨트롤 능력을 지닌 그는 상황에 맞는 슛을 잘 고르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정확한 슛을 날려 골문을 흔들 능력을 지닌 것이다. 크지 않은 몸짓에서도 타점 높은 헤딩은 그의 또다른 무기다. 과거에 비해서 활동 반경이 다소 좁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프리롤 형태에서도 수비를 흔들만한 재능을 지닌 선수다.


 그러한 안정환에서는 시련의 계절이 참 많았다. 그리고 너무 외로웠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외로움을 겪어야 했던 그는 공으로서 그것을 위로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성인이 되어, 아주대를 졸업하고 부산에 입단하게 된다.


 그야말로 '꽃미남'이라 불리며 프로축구의 새내기로 등장했던 그는 이동국, 고종수와 함께 신세대 축구 선수로서 각광을 받으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K리그 역사에서 현재 이천수 급 이상의 '사기 유닛'이 있다면, 그것은 안정환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많은 득점을 쏟아부으며 긴 머리를 휘날리던 그를 보고 설레지 않을 여성이 누가 있을 것인가. 할 정도로 멋지고 인기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2000년. 이미 국내리그의 레벨을 뛰어넘은 그는 이적을 결심한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아 A 페루자로 전격 이적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환경이었지만, 국내 팬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 한국인 최초의 세리아 진출 선수는 리그 초반 큰 활약 없이 팀 적응에 애를 먹는 듯 했다. 때마침 국가대표 감독으로 역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만 같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타국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러나 안정환은 노력했다. 그리고 노련했다. 결국 골로써 그 값진 가치를 조금이나마 회복해가며 부활의 날개를 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 그렇게 호락호락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인터뷰가 아닌 플레이로서 그 능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2002년, 히딩크호에 무혈입성하며 새로운 역사의 서막을 알리는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 골든보이로 활약하다.

 2002년. 한국은 다시 이룩하기 힘든 한국 축구의, 아시아 축구의 역사를 쓰게 된다. 가히 놀랄만한 이 업적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폴란드와의 첫경기를 통해 사상 첫 승에 열광하던 대한민국. 그리고 안정환은 미국전에서 패색이 짙던 후반, 이을용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감격적인 월드컵 개인 통산 1호골을 뽑아내며 팀의 승점 쌓기에 보탬이 되었고,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구에 화자되던 '안톤 오노 세레모니' 통해 다시금 국민적인 인기가 사그러들지 않는 선수로 추앙받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그의 인생에선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경기였을 것이다. 힘들었고, 두려웠고, 후련했고, 행복했던 우리 국민이 느꼈던 감정 그대로. 안정환은 전반 PK 실패를 딛고 이제는 월드컵 역사속에 자취를 감춘 골든 골의 주인공이 되어 국민적 영웅이 된다.


 골든보이. 미국 전 헤딩골과 유사한 이 득점으로 그는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다. 그 뒤에서도 승부차기에서 1승을 더해 4강에 안착할때까지 그는 전경기를 뛰며 한국의 신화에 주인공이었고, 경기를 뒤짚는 승부사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잘생긴 얼굴을 가진 서러움'을 말끔히 씻어버리며, 한국 축구사의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하며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사건의 시초'가 될 거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이탈리아와의 좋지 않은 관계에 놓인 한국. 그리고 안정환. 페루자에선 몸값이 솟은 그를 굳이 잡아둘 이유가 없었다. 또한 이탈리아 축구계에서도 이단아로 '내놓은' 가우치 구단주의 입에선 "코레나노 안을 쫓아내겠다"는  망언이 이어졌고,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 소속팀은 부산 또한 팔을 걷어 붙었다. 임대신분으로 페루자에 갔던 안정환에 대한 완전 이적시 이적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던 계약 조건대로 페루자가 이행하지 않았다며 소송에 이르렀다.  전액중 일부만 받았다는 부산과 모두 다 지불했다는 페루자 측의 엇갈린 싸움은 한 선수의 축구 인생을 막아 버리는 듯 했다.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졸지에 한국에 남아 '개인 훈련'이라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며 '무적' 선수가 될지도 모르는,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된 그로서는 힘든 시련의 시기가 매섭게 펼쳐졌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나왔다. 바로 일본의 연예메니지먼트 사인 'pM'이었다 PM측에선 부산 측에 대신 돈을 지급하고 그를 사겠는다는 제의를 했고, 결국 그의 소속은 페루자도 부산도 아닌 일본 굴지의 한 메니지멘트 사가 되어버렸다.

 
 결국 그가 싸인한 클럽은 프랑스의 작은 시골 클럽인 메츠였다. 자신을 영입하려는 그들의 정성에 반했다는 그는 왼쪽 미드필더라는 보직을 수행했지만, 맞지 않는 옷처럼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포지션이 아니었기에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새로운 행선지를 찾아나섰고. 그곳이 지금 그가 있었던 분데리스가의 뒤스부르크이다.

 
 
이적 후 교체 선수로 활약한 그는 선발 출전 경기에서는 어시스트, 골 등 팀에 일조하며 리그 막판 반전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팀은 강등을 피할 수 없었고, 강등시 팀을 옮길 수 있다는 계약 조건에 따라 새로운 팀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그에게 꼬옥 맞는 팀은 어딜까. 어떤 선수나 자신에 맞는 팀이 있고,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팬들이 있는 곳에서 뛰기를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지껏 안정환이 입은 유니폼 중 태극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그를 잘 이해한 팀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었고, 그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던 팀도, 그를 진정으로 믿고 응원해준 팬 또한 자국의 서포터스였기에. 앙리 처럼 오히려 레블뢰 군단의 유니폼 보다 아스날의 셔츠를 입었을 때 더 눈부신 성과를 내는 선수가 있는 가 하면, 안정환과 같은 케이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붉은 유니폼에만 만족할 안정환이 아니다. 그는 분명 유럽을 호령할 기회도 능력도 있었지만 운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팀을 찾게 된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죽이 잘 맞는 친구처럼, 맞춤복처럼 꼭 맞는, 그런 팀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주길 바란다.



뛸 수 있을 때 유럽에서 뛰고 싶다 …  

 안정환은 이번 월드컵이 또 한번 기회의 무대였다. 하지만 아시아 최초 개인 통산 3호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붉은 함성이 원했던 16강 토너먼트의 진출은 실패하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 앉아 울던 25살의 이천수에게는 아직 보여줄 게 많았던, 유럽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기회였기에 더욱 가슴 아팠던 것 같다. 하지만 서른 살의 안정환도 그 못지 않았다. 월드컵 무대에서 세 골을 넣어봤지만, 아직 진정으로 유럽 무대를 호령하지 못한 한이 가슴한켠에 내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시금 신발 끈을 조여맨다. 이제 그의 이름을 알고, 그의 발끝을 기대하는 세계의 축구팬이 분명 더 많아졌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번대회는 나름대로 값진 산물을 남겨주었다. 안정환 본인에게 부족한 면과 강점도 명확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이의 말 처럼 30줄에 접어든 대한민국의 선수는 표현그대로 롱-런 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내복귀를 통해 선수말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안정환의 생각은 다르다. 뛸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은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곳이 빅리그였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평생동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말하는 그에게서 스무 살의 열정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렇다. 늦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발이 짖무르도록 뛴 박지성의 발에만 관심을 쏟아 부을 뿐, '피부가 장난이 아니던' 시절 CF계를 평정하던, 이제는 검고 거칠거진 안정환의 피부는 눈치채지 못한 듯 싶다. 그도 노력하고, 또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젠 그 발전의 질이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어느때보다 더 신중한 마음 가짐을 유지한다.


 2002년. 대한민국의 대표팀 승선을 놓고 저울질 하던 히딩크 감독이 그를 호마리우와 비교를 했던 대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선수이고, 확고한 개성을 지닌 스타 플레이어이다. 그러면서도 본인을 결코 띠우지 않으며, 사람들의 기대처럼 오만하지 않다.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하지 않으며, 팬들의 성원이나 비판도 넘겨 듣지도 않는다.


 그는 결코 약하지 않다. 그의 축구인생에는 항상 그를 쓰러뜨리려는 시련이 지속되었지만, 때마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그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왔다. 이제 기회다. 다른 한국 선수들이었다면 이제 선수 생명의 막장에 다가서고 있겠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의 첫 장일 뿐이다.


 서른 살의 안정환. 그는 외신의 보도 처럼 '어린왕자'도 우리의 기대처럼 매번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선수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그가 2002년 이탈리아 전에서 흘린 눈물을. 그리고 그렇게 두 뺨을 타고 내려온 가능성을. 이제 결코 어리거나 젊은 선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욕심이 나고 놓칠 수 가 없나보다. 그 가능성이 서른 살에 꽃 피게 된다. 그를 믿자. 그리고 이젠 그에게 성원만을 보내도 전혀 아깝지도 넘치지도 않다.


 이제 비상이다.  더 높이 날아오를 서른 살의 안정환의 포효를 더 오래토록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98년 월드컵이 끝나고.. 대표팀이 5:0으로 불리던 그 때 안정환을 만났습니다.

화려한 스탠딩 플레이는 남미나 유럽선수들의 성역인줄로만 알고 있던 그 때
98월드컵의 치욕때문에 더욱더 아련해 보이던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스탠딩 플레이'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한국 선수가 아니 아시아 선수가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구나...
브라질의 히바우두 이탈리아의 토티 스페인의 라울 같은 세계의 슈퍼스타들이 있는 나라가
너무나도 부러웠던 그 때...
바로 안정환을 만났습니다. 저 선수라면... 하는 마음은 아마 그 때 부터였겠죠.


안정환...

그는 분명히 성공한 축구선수입니다. 아마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였다고 봐도되겠죠.
실적으로 본다면 월드컵에서 3골이나 득점했으며..
2002년에는 4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두번이나 팀을 구했고...
2006때도 팀이 가장 필요할 때 득점을 해냈습니다.
아마 안정환의 국대커리어는 완변하겠죠.

그럼에도 안정환에 대한 묘한 아쉬움과 비난은...
아마도 안정환이 그 만큼 특별했기 때문이겠죠.

이 선수라면.. 유럽에서도 슈퍼스타가 될 줄 알았습니다.
98~99년도에 그 오만할정도였던 개인플레이로 k리그를 평정하는 것을 볼 때
99~02대표팀에서 해외 그 국가대표 수비수들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던 그를 볼 때
한국선수로서는 절대 갈수가 없을 것만 같았던 세리아A에서..
그 다비즈, 지단의 미들진을 휘젓고 몬테로를 구토시키는 것을 봤을때..
그 특별하다던 세리아A에서 '10'번으로 인정받는 걸 봤을 때..

정말 이 선수라면.. 유럽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것 같았습니다.

어느 새 안정환이 30살이 넘고.. 예전의 찬란함이 사라져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가슴이 묘하게 찡하네요.

안정환 선수는 정말이지 한국축구에 특별한 재능이었습니다.
이미 '이영표' '박지성'같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대한민국에서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마도 '안정환'같은 no10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내뿜은.. 그야말로 '스타플레이어'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겠죠.

k리그에서 다시 볼수 있다니 좋네요.
안정환 선수가 있어서 축구가 참 재밌었습니다. 싱숭생숭해서 글 써봅니다.









# 장면1

2002년 6월 대전 월드컵 경기장. 118분의 사투 끝에 파마를 한 안정환의 머리에 공이 걸렸다.
 그리고 그 볼은 부폰이 지키고 있는 골대의 왼쪽 모서리로 소름끼치게 빨려 들어갔다.
대한민국 월드컵 8강 진출.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예선전인 미국 전에서 그가 넣었던 동점골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자신이 골을 넣은 건지도 몰라서 한 바퀴를 구른 후에야 골뒤풀이를 하러 갔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골을 넣고 반지에 키스를 하며,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에 뒤범벅 되어
사진기자들이 밀집한 지역에 그냥 드러 누워버렸다. 사람들은 '반지의 제왕' 안정환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2002년 그는 말 그대로 제왕이었다.



# 장면2

2007년 모 축구 연습장. 트레이닝 차림의 안정환이 볼을 차고 있다.
낭인 안정환의 뒷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났다. 화려했던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그는 이탈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는 죄 아닌 죄로 세리에A 페루지아에서 강제로 방출당했다.
그리고는 프랑스의 FC메스, 독일의 뒤스부르크를 전전했다.


과감하게 유럽행을 포기한 안정환

 
▲ 지난해 한 평가전에서의 안정환 선수
 

운칠기삼. 그를 생각하면 이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정말 더 좋은 팀으로 갈 수는 없었을까.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도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대한민국의 1승을 이끌었던 그다.

당시에도 테크닉과 경기를 읽는 눈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후 그는 유럽 명문팀으로 재진출하려는 본인의 높은 이상과 현실의 냉혹함 사이에서 고민하는 선수일 뿐이었다. 그의 명성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팀은 아무 곳도 없었다.

"현애살수장부아(縣崖撒手丈夫兒)."

벼랑에 매달렸을 때는 손을 놓을 줄 알아야 장부라고 했다. 안정환은 과감히 유럽행을 포기했다.
그리고 수원을 택했다. 더 지지부진 하다가는 축구인생이 위험했다.

그리고 소속팀이 없다는 불안함에 대표팀까지도 그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수원 삼성은 안정환을 따뜻한 환대로 맞았다. 본인도 수원을 발판 삼아 다시 유럽에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초반 그의 플레이는 더뎠고, 생각만큼 존재감도 덜했다. 물론 3월 4일 대전과의
하우젠컵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긴 했지만,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도 안정환의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본인 역시 아직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자연히 그의 출전 시간도 줄었다. 부동의 스트라이커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사실 선수가 오랜 기간 동안 팀을 떠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찌보면 위험한 일이다. 더군다나 안정환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76년생) 더욱 그렇다.
게다가 안정환이라는 세 글자는 축구팬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이름이다.


그런 그가 부정확한 패스와 둔한 움직임을 보이니 팬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랬던 그에게 청신호가 켜졌다.
그가 조금씩 기량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신호는 한국 축구 전체에도 청신호다.


그는 지난 5월 30일 성남 일화와의 컵대회 6강 플레이오프에서 동점골을 넣으면
부활의 신호탄을 날렸다. 움직임이 세련돼 졌고, 골과 비슷한 상황도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그의 발 아웃사이드에 걸린 공은 분명 날카롭게 성남 김용대 골키퍼의 왼쪽 구석을 찔렀다.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본인도 "실수가 줄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사실 그럴만도 하다.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선수로서 현재 자신의 위치나
 플레이에 만족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는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정환은 잉글랜드의 수퍼스타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같은 선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고, 광고나 화포 촬영 등 축구 외적인 일도 그리 마다하지
않는 부류다. 몇몇 선수들은 다른 일을 병행하면 축구 실력이 떨어지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데 안정환이나 그런 부류가 아니다. 화보 좀 찍는다고 베컴의 오른발의
예리함이 무뎌지는 것도 아니고, 화장품 광고를 찍던 당시 안정환은 전성기였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안정환은 그만큼 개인 관리에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선수라는 뜻이다. 그는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도 피치(Pitch)

[출처:DC 국축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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