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5. 20:41ㆍLove Story/사랑 그 흔한 말
열두시에 잠들었지.잠결에 전화벨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어.그런데 끈질기게 날 붙잡는 잠 때문에 전화벨은커녕 미련하고 둔한 잠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했지. 그렇게 좀 더 잤을까? 인기척이 느껴졌어.샤워를 하는지 물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그냥 웅크린채로 잠속에 빠져있었지.누군가.. 아마도 남편이겠지만 내 옆에 눕더라구.모르겠어. 이 미련한 잠은 계속 날 놓아주질 않던걸.어제는 나도 많이 피곤하고 고단한 하루였어.바쁘고 정신없고, 그런중에도 기쁘게 일처리를 하고 내심 내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했던 그런 날이었지.남편에게도 그렇게 바쁘고 힘든 날이었나봐.많이 늦은 퇴근길. 잠들었을 아내에게 미안해서 살짝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들어와 살금살금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물로 땀을 씻어냈을거야.그리곤 웅크리고 잠들어있는 아내곁에 누워 잠을 청했겠지.아는척도 안하는 아내에게 서운했을텐데도 살짝 안아주며 토닥토닥.그렇게 우리의 어젯밤은 캄캄하고 고요하게 흘러갔어.새벽이 밝아오고 또 인기척이 느껴졌어.아직 일어날 시간도 안?榮쨉 뭘까.난 남편이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는줄 알고 그냥 잤는걸.타이머에 맞춘 TV가 켜지고 깨어보니 내옆엔 남편의 베개만 덩그러니 있더라구.식탁위엔 일찍 나간다는 짧은 메모한장.뭐야.. 눈물이 핑돌았어. 미련한 나야. 잠텡이 나야.무슨일이 그리도 많아서 오밤중에 들어와 새벽에 나가는지.세상일 혼자서 다하는지. 미련하다고 혼잣말로 욕했어.미련곰팅아 깨우지 그랬어. 하고 욕했어.출근해서 문자메시질 하나 보냈어."간밤에 누군가 다녀갔나봐. 자기맞아?"답장이 왔네.. "아마 그럴걸?"평소엔 이런♥하트를 다섯 개쯤 날려보냈던 메시지였어.마음 아프고 미안하니까 그것도 못하겠더라구.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사랑한다는건 커다란 아픔을 가슴한복판에 들여놓는거라구.그런거라구... 하루종일 내 가슴한복판이 아파.많이 아픈 그런 날이야남편의 지갑이 놓여있다.주인을 닮아 적당하게 부드럽고 약간은 낡은듯한.얼핏봐도 영락없이 주인을 닮은 모습이다.열어볼까 하다가 그냥 눈을 돌린다. 열어본들 무엇하랴. 몇 푼 안되는 용돈이 처량하게 담겨있을테고, 신용카드 한 장 없이 주유소 보너스카드나 급히 받아넣은 명함 몇장이 들어 있을테지.열자마자, 둘이서 나란히 앉아있는 사진이 여전히 웃다가 멈춘 그대로 시선을 잡을테고그 웃음을 들여다보면서 비닐너머의 얼굴을 손끝으로 한번 쓰다듬게 되겠지.남편의 지갑이 놓여있다.남편은 무슨 비밀도 없는걸까.아님 지갑속에 들어있는 무엇하나에도 걱정이 없는걸까.고개를 갸우뚱 기웃거리고 지갑속의 표정을 상상하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얇아터진거 뭐하러 꺼내놨나..살짝 열어보고 채워놓을까? 아냐~절대 열어볼 수 없어.. 열자마자 웃고있는 사진에 금새 눈물이 나올지도 몰라.남편의 지갑이 놓여있다.두툼한 지갑을 몰래 열어볼 수 있었으면...얄팍한 지갑.. 낡은 지갑을 바라보는 일쯤은 없었으면...나는 그렇게 끝까지 남편의 지갑을 열어볼 수가 없었지...그 얄팍한 지갑을 열어본다는 건, 남편의 가슴을 열고 빨갛게 욱신거리는 심장을 열어보는것만 같아서..많이 아플것만 같아서...새벽녘, 술냄새 풍기며 들어온 사람.송년회 한다더니 몇차까지 갔던건지 느슨한 넥타이.구겨진 바지. 고단해 보이는 구두.못마시는 술몇잔에 취해 세상을 다 얻은양 흥얼거리는 유행가를 앞세워 들어온 남편.집에 들어오자마자 하는말, 택시잡느라 삼십분 떨었어. 춥다.내 체온은 37도, 38도 39도.. 40도..100도.남편의 춥다는 말한마디에 안스러운 내맘은 금새 1000도.양말을 벗겨내고 따뜻한 물에 발을 닦아주니 금새 잠들어버린 내 소중한 사람.문단속하고 불을 끄려다 현관에 말없이 놓여있는 남편의 구두.. 눈에 걸리는 흐트러진 구두 한 켤레 가지런히 모아놓다 구두약을 꺼내 닦아버렸지.그러고 나니 새벽네시.나의 일요일 새벽은 그렇게 밝아버렸지.넉넉한 늦잠속에 행복이 숨어 기지개를 펴고그저 따끈하게 끓여낸 누룽지탕 한그릇에도남편의 주름살은 부채살처럼 환한 웃음으로 펴졌지.내가 오늘 한 일은 그저, 하루종일 햇살아래 누워있는 그의 곁에서 새치를 뽑아 주거나 귤을 까서 입속에 넣어준 일 뿐.때론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사람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살고, 아무것도 아닌 나 때문에 그이가 살아간다는 걸 서로가 눈치채곤 하지.그렇게 살아가는 일.. 그냥 이렇게 사랑하는 일.그런 숨을 쉬며 살아있는 일.참 행복한 일이지.우리집 베란다로 향하는 유리문에는 성탄카드가 계절에 관계없이 매달려있다. 작년 어느날, 자꾸만 그 유리문에 박치기하는 날 위해남편이 서랍을 뒤져 붙여놓은 성탄카드.벚꽃 만개한 4월에도 그 유리문은 크리스마스였고무덥게 땀나던 7월에도 역시나 그랬다.무심코 베란다로 나가다 어김없이 박치기하던 나는내 눈높이에 맞춰 떡 버티고 있는 그 카드 때문에 박치기를 면할수 있었고, 그때마다 남편의 재치에 웃곤했다.이젠 햇살받아 바래진 그 카드를 바꿀때도 ?榮쨉?BR>괜히 아까워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었다.별것아니지만, 남편의 성의를 떼어버리는것만 같았다.어제는 남편이, 회사에서 나눠준 연하장을 스무장쯤 들고왔다.깜찍하고 예쁜카드가 아니고 소나무에 학이 앉아있고구름이 떠있는 구식 謹賀新年 연하장이다.여기저기 거래처며 인사할곳을 가늠하고는그중 하나를 골라 유리문에 있던 성탄카드와 교체해줬다.아마 내게주는 새해 연하장이 아닌가 싶다.送舊迎新이니 謹賀新年이니 뒷면엔 회사이름도 인쇄되있고성탄카드만큼 예쁜모습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품위있게유리문에 붙어있게 된 박치기 방지용 근하신년~나를 대신해 유리문이 받아놓은 새해연하장은이젠 일년내내 근하신년이란 이름표를 내세워알차고 행복한 날들 만들라고 말해줄 것 같다.색깔이 바래고 쭈그러져도 절대 손대지 말아야지.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남편의 권한이니까.행복한 권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