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45

2007. 9. 18. 13:05Love Story/사랑 그 흔한 말


내가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좀처럼 잠을 잘 수 없다고

녀석은 이따금씩 말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읽지 않아도 꼭 책을 펴 든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것이다.

몇 분이 지난 후에 희미하긴 하지만

규칙적이고 앙증맞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작은 새 中 / 에쿠니 가오리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빛을 등지고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속에서 옷을 개면서,

나는 왠지 잠이 와 꾸벅꾸벅 졸았다.

이런 식으로 잠드는 낮잠은 정말 기분 좋다.

금빛 꿈을 꿀 것 같다.

....

옆에 애인이 있든 없든, 나는 술 취해 걷는 밤길을 좋아한다.

달빛이 거리를 비추고, 건물의 그림자가 한 없이 이어진다.

내 발소리와 먼 자동차들의 소리가 어우러진다.

도시의 밤은 하늘이 밝아서,

왠지 모르게 불안하면서도 안심이 된다.

....

"하늘이 개어서 별이 잘 보여"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그러고는 외로워서 미칠 듯한 기분이 된다.

왜, 이 사람과 있으면 이렇듯 외로운 것일까.

둘 사이에 있는 복잡한 감정 때문인지도 모르고,

내가 우리 둘의 관계에 좋아한다는 것 외에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고 싶다든지 하는 그런 분명한 감정을...

다만 한 가지,

이 사랑이 외로움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내내 알고 있었다.

빛처럼 고독한 이 어둠 속에서 둘이 말없이,

저릿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밤의 끝이다.


하얀 강 밤배 / 요시모토 바나나




그랬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어른이 된 만큼 외로웠다.

사랑하면 사랑한만큼 외로웠다.

무엇이든 완전한 것은 없었다. 불완전한 것 투성이였다.

불완전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만드는 것은

역시 사랑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할 때 외엔 없었다.

그러나 넋을 잃을 정도로 반한 사람과

똑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해도 고독은 있었다.

아무리 깊게 빠진 사랑일지언정, 틀림없이 고독은 있었다.

그런데 겁도없이 나는

죽을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리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카페 페닌슈라




창 밖을 내다보다가 계절이 바뀌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도로와 보도 사이에 길게 뻗어 서 있는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은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긴 외투를 입은 채 거리를 지나다녔다.

나는 이틀째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광고용 신제품 설명서 위에

수성 펜을 던져두고 좀더 가까이 창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다니.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계절을 그대로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까닭 없이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의 자줏빛 소파 / 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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