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5. 20:27ㆍLove Story/사랑 그 흔한 말
국민학교땐 참 잼난일들이 많았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학교 교과서도 잼났었고,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방학땐 탐구생활까지... 학년초에 비닐과 포장지로 책을싸서 보관했다가끔은 달력 뒷면으로 책을 싸기도 했고 까만색 매직팬으로 제목을 적었다학교에서는 받아쓰기와, 태극기 그리는 것두 하구.. 그때는 왜그렇게 빨간게 위엔지 파란게 위엔지 헤깔리던지... 그때 칠하던 색연필은 뒤를 돌리면 앞으로 쭉 나오는 거였다.앞에 종이를 돌려까는 것도 있었다연필 한 다스는 생일 선물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고.. 학교 갈때 왼쪽 가슴에는 꼭 이름표가 달려 있었던거 같다.1학년 입학식때는 하얀수건을 옷핀으로 좌측 가슴에 달고 다녔다국어시간에는 가끔씩 받아쓰기 시험도 보구... 선생님이 질문하면 꼭 대답하기전 손을 들곤 했던거 같다. 그때 시간표는 꼭 국산사자 나 미국사자 등의 그림이 있었다횡단보도를 건널땐 꼭 한손을 들고 건너야했고, 복도에선 손을 허리 뒤로 올린후 왼쪽으로만 다녀야했다. 방학땐 어김없이 탐구생활과 독후감, 그리고 일기쓰기가 있었다. 일기는 한꺼번에 몰아쓰다보니 날씨를 몰라 난감해하기도 했다개인적으로 난 슬기로운 생활 또는 자연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동네 문방구에서 '물체 주머니'라는 신기한 주머니를 팔기도 했었던거 같다. 학교가기 전날밤에 미리 책가방을 꼭꼭 챙겨뒀으며, 연필은 잘 깍아서 필통에 넣어두고 1시간 지날때마다 연필을 바꿔썼다. 그때는 선생님이 샤프는 못쓰게 하셨었다. 글씨를 쓸 때는 꼭 오른손으로, 잘 깍은 문화 연필을 사용했다. 연필을 깍을땐 집에 있는 하이샤파로 깍았었고, 가끔씩 넣기만 하면 저절로 깍아주는 자동 연필깍기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반면 칼날에 연필을 돌려 깍아야하는 간이 연필깍기도 있었던거 같다.하여간 그 연필을 오른손에 쥐고 책받침을 받치고 글씨를 썼었다... 책받침 뒤에는 꼭 구구단과 알파벳이, 가끔은 천자문이 있었다.그땐 소피아 마르소, 피비케이츠, 브룩실즈등 세명의 아이돌 여배우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문방구에서 배우사진을 코팅해 책받침으로 사용하는게 유행이었다대표적인 지우개는 점보 지우개, 넘버원 지우개였다. 한때는 선생님 지우개도 유행했었다. 국어선생님, 수학선생님 등등.. 그때는 문방구에서 주로 사는 것들은 수수깡, 찰흙, 지우개였다. 소풍때는 늘 비가 왔었던거 같은데 아이들은 학교터가 공동묘지라서 그렇다고 했다 호호 할머니라는 귀신 이야기도 그럴싸하게 소문으로 떠돌았다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 원더우먼과 이노끼의 스캔들(?)도 있었다교실에는 둘이 같이 앉는 책상을 사용했기때문에짝궁이 여자면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지 못하게 심통을 부렸다시험을 볼 때면 가방을 가운데 올려 놓고 컨닝을 방지했다. 책가방은 쓰리쎄븐 가방이나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뒤로 매는 가방이 대부분 이였다주말에는 디즈니랜드와 톰과 제리를 보았고 일요일 아침에는 은하철도999와 천년 여왕을 보았다겨울에는 불조심 포스터를 늘 그렸고유월달이면 항상 6.25 포스터 그리기가 있었서 반공정신(?)을 길렀다10월이 되면 국군아저씨한테 편지쓰기도 했었는데... 가끔 위문품을 가져오라해서 치약, 라면, 비누를 사가기도했다5월에는 부모님께 편지쓰기, 선생님께 편지쓰기도 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생닭을 잡아파는 닭집과 솜틀집, 방앗간이 있었다하얀 암탉의 목을 자르는 장면은 아직도 꿈에 나올만큼 무서웠었다명절 전날엔 방앗간에 쌀을 가져가 김이나는 하얀 가래떡을 직접 만들어 가져왔었다떡국을 만들고 남은 떡들은 연탄불에 구워먹던 것이 생각난다뽑기를 해먹느라 국자를 태워 엄마에게 혼난 것도 기억나고달고나와 쫀드기란 맛있는 불량식품도 있었다,동네에는 뽑기아저씨가 작은 천막안에서 십자모양이나 별모양의 뽑기를 만들어 팔았다..옷핀에 침을 발라 찍혀진 모양을 부서지지 않고 만들면 특등상품으로 잉어모양의 노란 설탕과자도 탈 수가 있었다뻥뛰기 아저씨도 생각난다 뻥이요를 아저씨가 외치면 모두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터지길 기다렸다하얀연기가 나는 쇠대포를 쳐다보며 키득키득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여름이면 하얀 연기를 내며 달리는 소독차를 하루종일 ?아다녔고겨울이면 동네형들을 따라 동네산에 올라 썰매를 탔다그러다 전자 오락실이 생겨서 인베이더나 겔러그를 했다 그때는 몽땅연필과 펜촉을 하얀 모나미 볼펜에 끼워 재활용해 썼다샤프는 까만색이 인기였고 한반에 꼭 한두명씩은 최신 금빛 샤프를 썼었다. 체육시간에는 꼭 피구놀이를 했었고 가끔은 발야구도 했다음악시간에는 선생님이 꼭 오르간을 연주하시고, 우리는 거의가 리코더를 불줄 알았다. 탬버린 주머니 안에는 꼭 캐스터네츠와 트라이앵글이 같이 있었다. 그리고, 실내화 주머니는 항상 문제은행 주머니 였던것 같다.비오는날 아침이면 풀밭에는 달팽이와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텔레비젼에서는 밤 10시가되면 A 특공대라는 잼나는 외화씨리즈를 했고 맥가이버라는 희대의 영웅과 외계인과 전쟁을 하는 V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다이애나라는 외계인 여자가 쥐를 먹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그리고 키트라는 자동차와 에어울프라는 헬리콥터가 있었다만화로는 요괴인간과 요술공주 세리, 캔디 그리고 미래소년 코난이 재밌었고김청기감독의 태권브이와 마루치 아라치는 국산 만화 영화로 인기가 있었다그리고 얼마 뒤에는 우뢰매를 안본 학생은 거의 없었다 놀거리가 많지 않던 그때, 학교가 끝나면 동네아이들이 모두 모여땅따먹기, 삼팔선, 오징어, 다방구라는 게임을 다 함께했다. 공으로 하는 왔다리 갔다리와 짬뽕 이라는 간이 야구놀이도 했었다 여자 아이들은 주로 고무줄과 공기놀이를 했고 남자 아이들은 구슬로 삼각형이나 홀짝을 했다 집에 달력을 접어 만든 네모난 딱지치기와 문방구에서 파는 동그란 딱지가 있었다동그란 딱지를 두손으로 숨킨뒤 높낮이를 맞추는 게임도 했었다 장남감이 없는 그때는 종이로 만든 뱀주사위놀이와 책받침을 잘라 공으로 사용한 축구판이나 야구판 놀이도 했다공기놀이도 유행했었다. 잘하는 애는 안죽고 100년도 갔던거 같다.재기차기와 말뚝박기 말타기 놀이도 뺄 수 없는 즐거운 놀이들 이었다여자 아이들은 종이 인형을 좋아했던 것 같다..가위로 여자인형과 옷 모양을 자르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던거 같다..오랫동안 가지고 놀다보면 목이 떨어져 목에 테이프를 붙여 가지고 놀았다.일년에 한두 번씩 채변검사를 했는데 검사날에는 가족의 대변이나 화장실에 대변을 넣어 제출했다가 회충약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그리고 그때는 종기가 생기면 늘 이명래 고약을 붙였다.운동회날에는 부모님이 오셨고, 김밥을 먹거나 찐계란과 사이다를 마셨다청군 백군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고 엄마 손을 잡고 달리기도 했다,전교생이 오재미로 박을 터트리는 게임이 하이라이트였었던 것 같다그땐 집집마다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이 있었다눈이 오면 연탄재를 깨서 언덕에 뿌려 미끄러지는걸 막았다그때는 아이스크림과 하드가 있었는데, 지금도 나오는 스크류바를 비롯 쌍쌍바, 야구바(?), 누가바, 껌바, 쭈쭈바, 폴라포,부라보콘 등이 있었다. 애들이랑 쌍쌍바 하나 사서 2개로 나누어 먹었는데 그때 잘못자르게되면 ㄱ자로 잘라진 부분을 서로 먹으려고 다투기도 했었다.떡볶기와 야채만두를 파는 분식집이나 포장마차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불량식품이라 못먹게 했지만 참 맛있었다. 만화책으로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종합 만화지 보물섬이 있었고아기공룡 둘리는 최대의 인기작이었다. 학습지는 꼭 표준전과, 동아전과를 봤다. 겨울이되면 국민학교 교실 안에는 시커먼 쇠난로가 가운데 있었다.주번이 아침 일찍와 창고에 가서 나무가지와 석탄을 얻어오면 반에서 불을 잘 지피우는 아이가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나무를 넣어 불을 핀후 조개탄을 조금씩 넣어 난로를 따뜻하게 만들었다불조절이 안되는 난로라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은 너무 더워했고난로에서 먼곳에 위치한 아이들은 추워했기에 선생님은 한시간 수업이 끝날때마다 자리를 바꿔 주시곤 했다.3교시가 끝나면 선생님이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놔 주셨는데맨 밑의 도시락의 경우는 가끔 까맣게 타는 경우도 있었다..또 혼분식 장려로 인해 보리밥을 섞은 도시락을 가져가야하는 날도 있었다집에는 빨간 석유곤로가 있어서 음식을 만들때 쓰곤 했다우측으로 돌리면 심지가 올라가 불이 세지고 소화라는 한자가 써진 좌측으로 돌리면 불이 꺼졌다심지를 갈아껴주는 할아버지가 늘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리를 해 주었다또 칼 가는 아저씨와 고장난 시계나 머리카락 사는 아저씨도 계셨다한 밤중에는 메밀묵과 참싹떡을 사라고 외치고 다니던 아저씨도 기억이 난다거의 대부분의 집이 연탄식 온돌 이었고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딸려 있었다아궁이 위에는 늘 큰솥이 있었고 그곳엔 늘 따뜻한물이 있었다..번개탄이 생기기전에는 불이 꺼지면 옆집에가서 불이 붙은 연탄을 빌려와서 다시 피웠다.창고나 부엌에 늘 검은 연탄을 쌓아두었고 가끔 연탄이 떨어지면 새끼줄에 엮인 연탄을 사오다 깨트려 어머니에게 혼이 나곤했다동네에는 국수가게가 있었고 맑은날엔 국수를 빨래처럼 널어 말렸다조그만 동네 구멍가게 문들은 죄다 나무에 유리창이있는 미닫이문 이었고 주인가게 아저씨는 늘 종이 봉투를 만들고 계셨다.안방 아랫목엔 아버지를 위한 저녁밥이 이불에 쌓여 있었는데 가끔 장난을 치다 밥을 엎어서 어머니께 혼난 기억이난다..금성에서 나온 냉장고에는 열쇠가 달려 있어서 잠궈 놓을 수가 있었고 다리가 달린 흑백 테레비젼에도 미닫이 문과 자물쇠가 있었다방 한구석에는 어머니가 시집올때 가져온 빨간 재봉틀이 있어서 늘 신기해 했었다직접 사용하시는건 몇번 못봤으나 무척 아끼셨었다.발을 앞뒤로 움직이면 바늘이 위아래로 움직이는데 장난을치다 손을 찔리기도 했다..대부분의 집 안방에는 다락이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면 작은 계단이 있고 부엌위에 만들어져 있었다..다락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고 강냉이와 뻥튀기를 늘 숨겨 놓으셨다..천장에는 까만 스위치가 달려 있는 전구가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옆으로 돌리면 켜지고 다시 더 돌리면 꺼지는 방식 이었다화장실은 거의가 푸세식 이었고 휴지 대신 신문지나 전화번호 책도 있었던거 같다(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인거 아닌가. 전화번호책..)구멍이 난 변기 위에는 나무로 만든 뚜껑도 있었다..그땐 골목이 좁은곳은 드럼통에 똥을 퍼 날르는 아저씨들이 있었는데가끔씩 바닦에 흘려서 코를 막고 피해 다닌것도 기억이 난다.동네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고 지하수를 쓸수있는 수동식 펌프도 있었다바가지에 물을 담아 펌프에 조금 넣은후 펌프를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하면시원한 물이 꽐꽐 쏟아져 나왔다..세탁기는 통이 두 개가 있어서 세탁은 좌측 큰통 탈수는 우측에 작은통으로 했다아침마다 대문밖에는 동그란 종이로 입구가 막힌 유리병 서울우유가 와 있었다술을 드신 아버지는 가끔씩 투게더 아이스크림과 사브레나, 양과자를 사오셨다..명절이면 종합 과자세트를 사오시기도 했고 양갱이나 땅콩도 가끔 사오셨다동네 골목에는 자동차들이 별로 없어서 마음놓고 축구를 했다가끔 유리창을 깨기도 했으나 마음껏 뛰어 놀았던거 같다.....그 친구들은 지금 뭘할까..그때는 재미난게 참 많았던거 같다.... 가끔씩 생각하는 거지만... 끄적거려보니... 참....신기하다..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나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그때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