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사랑 그 흔한 말(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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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81
아침 출근길, 여느때처럼 지하철은 칙칙폭폭 지루하게 선로를 달리고 있다. 뒤로가지도 하늘을 날지도 않는다. 네모난 상자에 빽빽이 들어찬 시든귤처럼, 혹은 나무궤짝에 겹겹이 줄 맞춰 누운 죽은 갈치처럼 실려 나는 영혼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떠밀리거나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말고, 지금 여기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정이현 / 달콤한 나의 도시 오랫동안 연락없던 동창 녀석이 전활 걸어와서 며칠 전에 내가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걸 봤다고 얘길했다. 왜 아는체 안했냐고 했더니 운전중이었다고. 너무 멀어서 부르지 못하고 그냥 갔다고. 그래도 우연히 지나가는 나를 만나서 반가웠다고 얘길했다. 그래, 그런거다. 세상은 생각밖으로 너무 좁고, 우연은 수시로 일어난다...
2009.04.30 -
No.380
일곱살,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열일곱, 당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떠날까봐 두렵습니다 영화 가족 중에서 어릴 때에는 자기 부모에게 장점만 있다고 믿고 맹목적으로 사랑하지. 조금 자라면 상상한 것만큼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이 가끔 실망시킨다는 이유로 부모를 미워하기도 하지. 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부모의 결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단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결점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르지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기욤 뮈소 남이 어쩌다 한 번 베푼 작은 친절에는 고맙다는 말을 잘하면서도 정작 누구보다 감사해야 할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족들에게는 당연시 여기거나 오히려 투덜거릴 때가 더..
2009.04.30 -
No.379
남자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지났다 허겁지겁 나오는 바람에 핸드폰을 집에 놓고 와서 남자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화도 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빠르게 남자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여자를 기다리며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만 끊을게 사랑해" 여자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다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핸드폰에 음성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디야? 전화도 안 받고..좀 늦네? 근데..나 이렇게 너를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하기만 하다.. 이만 끊을게 사랑해" 여자는 그제야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여자의 눈물은 한 없이 흘렀다 믿음은 사랑의 필수 ..
2009.04.30 -
No.378
짝사랑은 은행에서 나눠주는 번호표가 아니야. 기다리면 자연스레 내 차례가 오는게 아니라구. 뒤에 눈달린 사람 없잖아. 뒤에서 애틋하게 보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있어. 올드 미스 다이어리 中 그 사람과 닮아 갈수록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자주가는 사이트를 즐겨찾기로 등록하고 그가 쓰는 치약으로 이를 닦고 그가 좋아하는 피아노 곡을 블로그에 깔고 그가 열광하는 드라마를 다시보기로 본다. 이를 닦으면서 그와 같은 질감과 향을 음미하고 그가 보는 드라마를 보며 그가 느꼈을 감동을 느껴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내 노력이 고스란히 그에게 전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랑은 한 사람의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뒤돌아선 그의 등을 바라보는건 그리움이지 사랑은 ..
2009.04.30 -
No.377
몇분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울리는 대로 내버려두었지만, 애인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은 유치한 행동인 것 같아 수화기를 들었다. " 난, 괜찮아. 잘있으니까, 걱정하지마. " 애인이 말을 꺼내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 "오늘밤, 같이 식사할 수 있을까?" "아니. 이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 나는 침착했다. 감정을 말로 전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에쿠니 가오리 / 웨하스의자 클렌징 젤로 화장을 지우고 꼼꼼하게 세수를 하면서 나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참방참방 물방울을 튀기면서 때론 경련하듯 오열하면서 나는 한없이 얼굴을 씻는다 가령 내가 쿄지를 좀 더 열렬하게 , 정말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지금이라도 쿄지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함께 저녁을 먹..
2009.04.30 -
No.376
조그만 백을 좋아한다. 바깥 주머니만 뱀 가죽인 갈색 미니 토트백, 검은 실로 짠 바구니 모양 백, 회색 나일론 베니티 백 등 몇개를 갖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게 변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전에는 큼지막한 가방을 좋아했다. 수첩과 화장품, 지갑, 약, 담배 외에도 500페이지짜리 문고본에 초콜릿, 경우에 따라서는 삼단 우산과 선글라스, 워크맨까지 들고 다녀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다. 조그만 백은 남자를 만날 때만 사용했다. 그때는 책도 우산도 초콜릿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외출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 달콤한 '의존 외출'을 할때 뿐이다. 내게 의존은 공포에 버금간다. "필요한 건 다 있어요." "물론 나한테도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200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