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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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71
나도 곧잘 혼잣말을 한다. 그런 버릇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마음 속의 자기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자기와 또 하나의 자기가 늘상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일수록 마음 속의 자기가 많다. 그것이 그 사람과 힘을 합해서 고독을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시혜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내가 선택해 온 거다. 그 선택이 나의 애정이나 의지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의사에 반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 인생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나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지우고 싶은 마음은 더구나 없다. 발자국은..
2009.04.30 -
No.370
남으로 가는 기차를 타겠습니다. 더딘 열차에서 노곤한 다리 두드리는 남루한 사람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지도에도 없는 간이역 풍경들과 눈인사를 나누겠습니다. 급행열차는 먼저 보내도 좋겠습니다. 종착역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자운영이 피고 진 넓은 들을 만날 수 있다면. 들이 끝나기 전, 맨발로 흙을 밟아 보겠습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천천히 흙내음에 한참을 젖겠습니다. 쉬엄쉬엄 걷는 길 그 끝 어디쯤에 주저앉아 혼자 피어있는 동백이며 눈꽃이며 키 작은 민들레의 겨울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봄이 깊기를 기다리라고 이르기도 하겠습니다. 기차가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에 귀를 열고 해지는 들에서 노을 한 개비를 말아 피우겠습니다. 이제껏 놓지 못한 시간을 방생하겠습니다. 봄이 오기 전, ..
2009.04.30 -
No.369
독수리가 점점 야성을 잃어간다고 한다. 보호단체에서는 얼마 전에 독수리에게 먹이를 나눠 주는 일을 금지시켰다. 사라져가는 독수리의 야성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이다. 우리 안에 갇혀 지내는 독수리는 이제 닭에게도 쫒기는 겁쟁이가 되어 버렸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삶의 편리를 쫒는 한편으론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야생을 잃은 독수리를 보며 생각한다. 나는 편해지기 위해서라며 스스로 너무 많은 양보와 타협을 해왔던 건 아닐까?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이병진 / 찰나의 외면 남아메리카의 강에 사는 육식어 피라니아를 수조에 넣고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피라니아가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수조 한쪽 끝으로 몰렸을 때, 수조의 한가운데를 투명한 유리판으로 막는다. 식사를 끝내고 반대쪽으로 헤엄쳐..
2009.04.30 -
No.368
죽도록 아프지도 않고, 죽도록 바쁘지도 않고 죽도록 신나지도 않고, 죽도록 그립지도 않고 죽도록 눈물 나지도 않고, 죽도록 슬프지도 않고 그만 그만 삶이 흘러갑니다 혹 창밖의 풍경 보듯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헛헛해집니다. 정혜승 / 하늘을 펼쳐보다 그리움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중에서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예전에 그렇게 굳게 결심했었는데 나는 다시 똑같은 실수를 거듭했다. 야마모토 후미오 / 연애중독 中 너의 홈피에 가는 게 아닌데 알잖아 난 여전히 그래 널 잊지 못한 채 이렇게 바보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내..
2009.04.30 -
No.367
그는 그녀가 키스하는 것 만지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둘의 몸이 닿는 것도 싫어했고, 심지어는 그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관능적이지 않았고 욕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녀는 그가 느끼는 것을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이언 매큐언 / 체실 비치에서 인간이 어느 정도 약한지는 나도 몸이 저리도록 알고 있다. 그리고 누구든 한 번 쯤은 어떤 시기에 무엇엔가 의지하게 마련이다. 즐기는 선을 넘어서 의지하고 말지. 즐거움을 얻자고 존재하는 것에 오히려 ..
2009.04.30 -
No.366
"그 사람 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어?" "아니, 전혀. 그런데 누군가가 그러더라고 그 사람과 만나고 헤어져 각자의 길로 갈 때 그 사람이 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수 있다구" "어째서?" "인사를 건네고 몇 걸음 발을 뗀 후 뒤를 돌아보래, 나를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이라면 헤어질 때의 인사가 끝이라는거지, 헤어짐이 아쉽지가 않은거야. 그런데 나를 마음에 둔 사람이라면 헤어짐이 아쉬워 뒷모습이라도 쳐다보게 된데.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래서? 너도 해봤어?" "응." "어떻게 됐어? 얘기해봐." "만난지 꽤 됐는데도 사귀자는 소리도 없고, 연락도 항상 내가 더 많이 했던거 같애. 그러다 어느날 만나서 영화를 봤는데 너무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고 했어. 이 사람이 나를 어떻..
200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