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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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01
춥다, 추리닝 한 장만 입고 나온 것이다. 봄, 여름, 가을하고 계절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려서 겨울이 되었다고 하는 실감을 전혀 할 수 없다. 언제부터 일까, 계절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 버린 것은. 열두 살 때는 교실 창으로 몸을 내밀고 흩어지는 꽃잎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달콤한 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 창이 있는 서점에서 / 유미리 갑자기 아무것도 모를때가 있다. 문득 떠올라 펼쳐본 추억의 귀퉁이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도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그리움도 내 주변의 소중한 인간관계도 하물며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어왔던 내 자신에게 조차. 이유없는 우울함을 끌어와 갑자기 아무말 없이 슬퍼질때가 있다. 적당히 내 자신을 위로하다가도 오히려 깊숙한 슬픔으로 다그칠때가 있다..
2008.11.12 -
No.300
"단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일 뿐이야." 시로는 자동차 창문에서 누군가를 찾듯이 가게 안을 살피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야마시타 씨는 그런 사람 없어?" 눈으로 그 의미를 묻자, 노리코가 덧붙혔다. "더 이상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은 사람." "없다, 고 생각해...." 시로가 대답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일어섰다. "그럼 진정으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구나." 슈거 앤 스파이스 / 야마다 에이미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모든 말 중에 그 의미의 간절함을 가장 잘 전달하는 말은 '보고 싶다' 이다. '보고 싶다' 는 말이 입에서 나올 때는 벌써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사랑은 우리 눈속에 있고 사랑이란 말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사랑이란 말은 우리 삶속에 있다...
2008.11.12 -
No.299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이외수 / 하악하악 중에서 만약 언제나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면, 아무 일도 못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겠지. 실수는 훌륭한 스승이란다. 그래서 아빠가 이렇게 똑똑한 거야. 아빤 실수를 무척 많이 하거든. 화성 아이, 지구 입양기 - 데이비드 제롤드 똑같은 충격을 가했지만 두 물체는 서로 다른 궤도를 따라 움직였다. 똑같은 시련에도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처럼.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더..
2008.11.12 -
No.298
짧은 눈물 쏟아낸 하늘 이내 파란 낯빛 돌아오고 세상을 환히 밝히는 붉은 잎새들 힘을 모두 풀어 제 몸을 익히고 한 줄기 햇살에도 떨어지는 잎 그러나 저 세찬 바람은 누가 보내는가 구름도 내려와 처연한 풍장風葬을 지켜본다 가을이 깊을수록, 가슴이 시릴수록 사람이 그립다. 사람이 그리운 날 중에서 오래도록 가을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오지 않는 가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했습니다. 내 상상 속의 가을은, 세상에 태어나 그럭저럭 꽤 오래 살아온, 그러나 어딘지 소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남자. 가끔 미소를 지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조금 쓸쓸해보이지만 따뜻함을 감추고 있는, 휘파람 같은 목소리를 가진, 쌉쌀한 맛의 입술을 가진, 비..
2008.11.12 -
No.297
겨울에는 가급적이면 그리움을 간직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에 간직하는 그리움은 잠시만 방치해 두어도 혈관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외수 - 장외인간 中 "왔어?" 이불 속에서 들려오는 유카의 목소리는 기운이 빠져 있었다. "뭐라도 먹었어?"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어." 농담처럼 유카가 대답했다. "왜?" 나는 운동화를 벗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 옆에서 발끝으로 유카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물었다. "왜라니? 네가 돌아오길 기다렸지." 나중에야 유카가 그저 되는 대로 내뱉은 말일 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부끄럽게도 당시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 끼쳤다는 게 아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렸다는 것에, 누군가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먹고 나를 기다렸다는 것에 등이 오싹해질 ..
2008.11.04 -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난 아무래도 사람들한테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인가봐요."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가 뭐죠?" "내가 사귄 남자친구 둘이 모두 나랑 헤어진 다음에 결혼할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날 내가 정말 결혼하고 싶어지면,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과 사귀다가 헤어지는 건가요?"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2008.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