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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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4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에 지금 울리고 있을 전화 벨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당신을 밤 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그래, 정말로 달렸어. 그것밖엔 할 수가 없었거든. 말로 분명하게 설명했더라면 이렇게 까지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지만 계속 달렸기 때문에 그때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넌 혼자서 달렸다는걸.. 난 그때 너와 함께 달렸어야 했다 난 너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
2009.01.07 -
No.323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고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더 절으리라. 그대의 말에 구태여 변명 아니하며 그대의 뜻이라면 지금까지 그대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가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아는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나는 나 자신과 대적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할 수 없으므로. 셰익스피어 / 소네트 시집 당신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수가 없었습니다. 차마 당신을 쳐다 볼 면목이 없어서... 당신은 늘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지요. 당신이 잘못해서 일이 생..
2009.01.07 -
No.322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걸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않고 또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동하지도 못하며 더구나 가슴속의 열정을 불사르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구로야나기 테츠코 / 창가의 토토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마음을 온전히 가누며 살기가 어려운 시대인지도 모르겠어요. 세계보건기구에서 내놓은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심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더군요.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안정제와 수면제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입니다. 사람은 똑똑해지고 사고력이 높아질수록 심성이 여려지게 마련이죠 서구의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 병원을 거쳐 갔는지를 안다면 깜짝 ..
2009.01.07 -
No.321
사랑에 빠지면 고통이 시작된다. 사랑의 고통이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내 경우에는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이 사랑했던 것 같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내게 잘했다. 문제는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었다. 몸이라고 하니 이상한가? 그러나 어른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어른의 사랑에서는 누가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잔인한 문제는 사랑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 관한 한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박현욱 / 아내가 결혼했다 하늘 가득 구슬을 박아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골에 가면, 육안으로도 더 많이 볼 수 있지만 말이지...
2009.01.07 -
No.320
"젊은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늘 그걸 물으며 살아야 해.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인생이 의미를 갖게 되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모리미 토미히코 몸이 불편한 사람도, 나이가 많은 노인도, 또는 나이가 적은 어린 아이도, 그들은 모두 사회적인 약자이긴 하지만 결코 인간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인간들 사이에 강약은 있어도 우열은 없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돌봐주는 사람의 의사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야.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고집을 부리면 안 돼. 어린아이를 소중히 하라는 건 개나 고양이처럼 귀여워하라는 게 아니야. 그 아이의 미래를 소중히 하라는 거지. 따라서 무턱대고 어린아이 취급을 하면 안 돼. 요즘 부모들은 어린아이와 강아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더구나. 그 때문에 소담스..
2009.01.07 -
No.319
"서른이 가까워지면 말이야... 옛날엔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없는게 많아."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은 노리코의 눈이 멀리 있다. "맨 얼굴로 있는 걸 못해." 아야가 곧바로 이었다 "맨 얼굴과 알몸 어느쪽이 부끄러울까 하는 수필이 있었지.." 노리코가 말한 수필 속에도 스물아홉의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잔 갑자기 욕실에 들어온 그를 피해 얼굴을 가렸었다. 스물아홉의 여자는 맨얼굴이 부끄럽다 펄이 든 분홍 립스틱도 부끄럽다 늦은 밤 달랑 하나만 사게되는 도시락이 부끄럽다 어린 여자를 경계하는 스스로도 부끄럽다. 카마타 토시오 / 29세의 크리스마스 中 " 믿어지니? 우리 이제 서른 두살이야 " 마침내 제야의 종이 울렸다 종소리는 담담하고 아득하게 가슴 안쪽으로 퍼져나갔다 입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려 보았다..
2009.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