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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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1
난 이 곳이 아주 마음에 들거든. 봐,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들이 마음껏 일제히 피어났어. 그리고 곧 모든 것은 한꺼번에 끝날 거야. 그것이 좋은 시작이든 나쁜 시작이든, 모든 시작은 끝을 전제로 해. 얼마나 다행이야. 그리고 가장 기쁜 일은, 이 곳에 네가 없다는 거지. 어쩌면 낙원이란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이 곳에서 난 더 이상 널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너 좋을 대로 살도록 해. 정말 미안해. 너도 알고 있지? 이렇게 헤어지는 게 가장 좋은 거야. ... 진실은 필요 없어요. 그저 유혹만 할 의도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죠. 상대가 심심해할 때, 뭔가 자극적인 것을 필요로 할 때, 또는 어떤 일로 상심해 있을 때를 노려요. 유혹속에 담긴 것이 오로지 유혹이라면 당신의 마..
2008.09.27 -
No.260
마트에서 과일을 살 때마다 나를 유혹하던 그것. 어제는 큰맘먹고 몇 알을 골라샀다. 노란키위. 쬐깐한 것이 비싸기는. 같은 값이면 큼직한 복숭아가 몇 개인지. 예쁘게 깎아담고 남편앞에 내놓았더니 본체만체. 생각해서 비싼거 산건데 왜 안먹지? 좀 먹어보라고 권해도 너나 먹으란다. 이거 비타민덩어리야. 안먹으면 후회할걸? 그때서야 마지못해 하나 먹어보는 남편. 남편은, 나머지를 내앞으로 밀어놓았다. 난 셔서 못먹겠다. 너 먹어~~ 내가 셔서 못먹는 자두는 잘도먹는 사람이 셔서 싫다구? 가슴이 찌릿~ 또 나 먹으라고 싫은체 하는구나. 가끔은 이 남자 꼭 아버지같다. 어린딸아이 생각해서 먹는것도 양보하는 갸륵한 어버이같다. 그래선지 어쩐지. 난 자꾸만 그이가 하늘처럼 높게 보인다. 하늘만 봐도 그이 생각이 난다..
2008.09.27 -
No.259
나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묻는 이런 질문은 소용없단다.. 시간이 지나면 형편없이 낯설어져 있거든.. 나를 바라봤던 사람은 다른 곳을 보고.. 나 또한 내가 바라봤던 사람을 버리고 다른 곳을 보고.. 나를 보지 않던 사람은 나를 보지.. 서로 등만 보지..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야..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는 관계속의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는 건 부질없는 짓이지... 신경숙 헤어지기 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괜찮지?" "괜찮네." 물론 기차처럼 긴 술집에 대한 품평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내가 겪고 있는 실연의 고통이 서서히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대답..
2008.09.27 -
No.258
바깥으로 나오니, 정말 모든 것에 가슴이 설레었다. 강렬한 햇살, 반짝이는 아스팔트, 정지되어 있는 나무들의 짙은 초록. 호흡을 하는 나에게 "지금 가슴이 콩콩거리지?" 라고 하며 사키가 활짠 핀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보였다. 햇빛 안에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웃음이라,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드디어 여름이 오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 N.P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에는 항상 눈앞에 시간이 무진장으로 남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마당에 널어 햇볕을 쪼인 이불의 보송보송한 단내. 지금부터 무슨 일이든 적어넣을 수 있을 것 같은 달력의 여백. 아직 펼쳐보지 않은 하얀 페이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가져다줄 행복한 예감으로 가득하다. 한 달만 지나면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겠지만 해마..
2008.09.27 -
No.257
"숲속에서 길을 잃는 일은 없을거라고 너는 생각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일단 길을 잃으면 숲은 한없이 깊어지는 법이거든..."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스무살엔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살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대해서도 과대망상은 없다. 세상이란 자기를 걸어볼만큼 가치 있지도 않다. 그것은 의미없는 순간에도, 의미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상영되고 누구의 손에도 보관되지 않고 버려지는 지리멸렬한 영화 필름 같다. 세상은 외투처럼 벗고 입는 것.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
2008.09.27 -
No.256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면 상처가 많이 생긴단다.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주어도 마음이 아프고 헤어질 때 한번 더 돌아보지 않고 총총 가버려도 상처를 받지.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상처가 되고 언젠가는 우리가 죽을 거라는 사실도 상처가 돼. 인간인 모든 게 선물인 동시에 상처가 된단다. 엄마의 집 / 전경린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사막에 사는 여자처럼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었어. 육십도의 고열도, 육년동안의 가뭄도, 뜨거운 모래바람도, 백이십 일간의 부재도, 삶 자체의 남루함과 처참함도...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하는 사랑이 박탈된 거야. 넌 단지 부정을 저지른게 아니라 내 생을 빼앗아 버렸어. 안 돼.... 난 이제 절대로 예전처럼 될 수 없어...
2008.09.27